말은 글보다 관대하다.
단어 사이의 공백이나, 불필요한 추임새, 어, 음, 가끔은, 더듬거리고, 어순을 섞어서 말하더라도 듣는 사람이 있다면 그걸로 말이 되기에는 충분했다.
나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글은 어떻게 글이 될까 생각해본다. 글을 쓰는 사람은 나인데 글은 왜 이렇게 사소한 것들로 나를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아니, 내가 글을 괴롭히고 있는 걸까? 길을 걷다가 건물 유리벽에 비친 내 모습이 보일 때, 그 유리벽 건너편의 사람도 나를 본다.
언제부터 나는 보여지는 사람이 되었을까? 보여지다. 보이다. 보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동사들 사이에 글자를 하나씩 덧붙였다. 쓰다, 쓰이다. 보다, 보이다.
‘-이’ 접미사가 한쪽 면이 거울인 유리처럼 단어 사이에 끼어들어, 이제 내 방은 두 공간으로 갈라졌다. 나는 거울에 비친 나를 보거나 거울 너머의 무언가가 나를 본다. ‘보여지는 사람’에서 ‘보여지다’는 문법적으로 옳지 않다. ‘보이다’에 ‘-어지다’까지 과하게 붙인 이중피동의 형태 뒤에 나는 어쩌면 숨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고개를 몇번이고 숙여야만 한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살다’라는 동사에도 피동형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살다-살리다’의 경우 ‘살리다’는 사동사의 형태를 띈다. 사동사의 경우 기본형이 되는 동사에 다양한 접미사를 붙여서 만들 수 있는데, 이 경우에는 ‘-리-‘가 붙었다. 접미사를 붙이는 것 이외에 사동문을 만드는 방법은 ‘-게 하다’를 붙이는 것이다. ‘살다-살리다-살게 하다’ 나는 살아 있었다. 그리고 ‘-리-’와 ‘-게 하다’라는 타인이 등장했다. ‘살리다’와 ‘살게 하다’의 차이점은 그 의도의 분명함에 있다. ‘나를 살게 한 것’은 나를 살게 하고자 하는 의도가 나를 ‘살린 것’보다 분명하다.
‘살다’는 동사일까 형용사일까? 울음과 함께 내가 첫 숨을 내쉰 그 순간, 살아있다는 상태가 신호가 되어 나는 숨을 쉬기로 결정하고 지금까지 살아 온 걸까? 그 첫 숨부터 나는 동사로서 살아온 걸까?
Dec 2024
글쓰기
정신의 교통체증
새 떼처럼 날아드는 낱말들이
유리창에 머리를 박고 죽는다
알 수 없기 때문에 나는 편안하다
Dec 2024
시야
가장자리에 흔들리는 목도리의 끝자락이
발 밑에 뛰어드는
까마귀인줄 알고 나는 소스라쳤다
벌건 광대 뼈 눈 주위에
싸락눈이 떨어진다
바람이 무참히 케이블을 끊어
시끄럽던 도로가 조용하다
나는 서른 살에 자신을 죽인 시인을 생각하며
값 싼 초콜릿을 사러 마트로 향했다
Nov 2024
조석 간만의 차
지금은 다 잊었다
구명조끼 색으로 빛나는
귀에 꽂은 체온계의 수은은
내가 모르는 새
올랐다 내렸다 한다
강 가까이에서
눈 앞머리를 누르면
붉은 씨앗이 터지듯 흐르는 것을
상상한다
영원히 알지 못할 법칙
Sep 2024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몸 내가 오른 팔을 올리고자 하면 오른 팔을 올릴 수 있다 거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내가 내 몸을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걸
May 2023